공정식 해병대 6대 사령관 졸수(卒壽) 연
공정식 해병대 제 6대사령관은 7월 23일 졸수(卒壽)연(90회 생신)을 맞아 해병대전우회 이상로 총재를 비롯한 중앙회 임직원을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네셔날 콘티넨탈 호텔에 초청하여 만찬을 가졌다.
공 사령관은 그의 회고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집은 삼대 해병대 가족이다,
내 아들 셋이 모두 해병대출신이고 손자들 중에서도 둘이 해병대와 연을 맺었다.
이 순간 까지 내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해병대가 자리 잡고 있다.
잠시도 해병대에 관한 일이 내 뇌리를 떠난 적이 없다.
해병대가 잘 나가면 괜히 기분이 좋았고 불상사가 있으면 가슴이 아팠다“라고 피력하고 있다.
공정식 사령관은
1925년(계축년)음 6월 8일 탄생일로서 바로 오늘 경남 밀양에서 탄생하시고 마산 공립 상업학교를 졸업
1946년 2월 8일 십대 일의 경쟁을 뚫고 오늘날 해군사관학교인
해방병단대에 입교
1946년 12월 5일 해군사관학교 1기생으로 졸업과 동시 해군소위로 임관. 군번 80125번
임관 후 2기생 생활훈육을 담당
1948년 대위로 JMS 302(통영)정 정장으로서 여순반란사건 작전을 수행
1949년 8월에는 최근 거론되고 있는 태극무공훈장 국무회의 의결 대기 중 인 것으로 알려진 몽금포 작전에 납북된 주한 미 군산고문단장 전용보트를 찾아오는 임무를 수행
1950년 4월 10일 한국 최초 전투함 백두산함 미국으로부터 인수하고
1950년 8월 PC 704함 부장으로 통영작전에 참가
1950년 11월 당시 김성은 해병대 참모장의 권유로
해병대 제 1연대 제 1대대장 (해병대소령)으로 부임 후
첫해 737고지 공격을 필두로 화천지구 전투,
철의 보루라 일컫는 도솔산 전투를 수행함으로써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무적해병”의 휘호를 받음 이어서 김일성, 모택동 고지전투와 동·서해 도서작전,
장단·사천강지구 전투 등 풍전등화속의 조국수호에 혼신을 다
하였음
김포여단장, 해병대 제 1상륙 사단장을 역임 후
1964년 7월 제 6대 해병대 사령관으로 보직
파월청룡부대 창설 및 파월을 주도
전역 후 에도 1967년 제 7대 국회의원으로 1971까지 입헌위국을 위해 헌신
2007년 사단법인 해병대전략연구소를 창설하시어 현 이사장으로 끊임없는 해병대사랑을 실천
많은 공훈으로 금성을지무공훈장 2회 등 다수의 훈장을 받음
공사령관은 현재 주영열 사모님과 3남 2녀 그리고 16명의 손자, 손녀 및 증손들과 더불어 다복하게 삶을 살고 있다.
이날 만찬에서 공 사령관의 삶을 반추하는 영상물 상영이 있었고, 중앙회 정택경 전승관리 실장은 사회를 보며 공 사령관의 약력을 보고했다. 이어서 중앙회 국진선 행정과장의 꽃다발 증정이 있었고 이상로 총재의 축하의 말씀이 있었다.
이상로 총재는“항상 해병대를 사랑하시는 사령관님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백수 천수를 누리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서 공 사령관은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으로 자식 3형제 모두 해병대를 보냈고 손자 두 명도 해병대를 갔다 왔다며, 6.25한국 전쟁 시 해병대가 아니면 서울수복 이후 서울을 지킬 자가 없었으며, 해병대야 말로 조국을 지켜내고 있고, 수도서울을 지켜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라고 했다.
국진선 중앙회 행정과장이 꽃다발을 증정하고 있다.
졸수연에 참석한 중앙회 임직원
공 사령관의 과거 행적의 영상물을 감상하고 있다.
존경하는공정식사령관님의 졸수연을 진심으로 축하드리오며 만수무강하옵시고,
가내에 만복이 깃드시길 비옵니다 !!...